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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다시 생각한다
지난 달 말 금강대학교에서 시민을 위한 강연프로그램을 열었다. ‘금강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논산에서 첫 강의를 시작했다. 수요일 오전마다 12회에 걸쳐 아시아의 종교문화에 대해 폭넓고 다양한 강의가 진행된다. 성공적이라면 이 시민강좌는 논산을 시작으로 기세를 몰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곧 개교 1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금강대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의미는 남다를 수 있다. 금강대학교는 곧 개교 10주년을 맞이한다. 소규모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특성화된 소수 정예교육을 자랑하는 금강대는 그동안 학술적 내실을 위한 칩거의 시기를 거쳤다. 이 시기에 학교는 HK사업의 수주로 한국불교학의 비약적인 토대를 맞이하기도 했다. 금강아카데미는 이러한 학교의 상승운에 기대어 그간의 학문적 축적을 시민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예의 가을이 되면 도시마다 축제와 학술행사가 풍성해진다. 지난 달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한 인문주간도 막을 내렸다. 학술단체들이 함께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면 기대보다 훨씬 ‘부드럽다’는 인상을 준다. 학교가 문을 열고 시민들을 찾아가는 일은 지금에 이르러 한시적인 사회적 요청이 아니다. 학교의 홍보와 성장을 위해서라도 자발적으로 대부분의 대학들이 시민과의 만남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만남에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이 조건은 시민들과 만남을 새롭게 꾀하고자 하는 교육계나 종교계가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질문을 던져보자. 트위터, 스마트폰, 강연콘서트, EBS의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그리고 그제 문을 연 안철수연구소 신사옥 등등을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 답은 ‘소통’이다. 소셜 미디어와 TV프로그램에서, 소설과 영화, 건축, 강의까지 근 몇 년간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화두는 단연 소통이다. 제작자와 소비자, 강연자와 청강자가 또는 조직원들끼리 서로 가깝게 가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장애물을 걷어치우고 있다. 물론 학교나 종교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이나 종교사회에서도 이 소통이라는 단어는 꽤 익숙할 뿐만 아니라 빈번히 사용하고 있는 단어였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이나 종교사회에서 이 단어가 지금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소통이긴 한데, 대체로 권위적인 소통이기 때문이다. 소통의 시류를 알고 흉내내고는 있으나 소통의 형식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다. 그 형식 속에는 대체로 권위적인 의례가 숨어있다. 강사의 의상, 목소리, 무대장치, 소개방법, 강의방식 모두가 의례처럼 형식화된 것을 말한다. 지금의 청중들은 그 형식의 권위를 금방 읽어버리고 등을 돌린다.
반면 지금의 소셜 미디어와 티비 프로그램, 소설, 영화, 건축 등은 어떤가. 소셜 미디어는 계층이나 직급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익명이다. 대중 강연의 이름은 아예 ‘콘서트’라는 말로 바꿔버렸다. 강의 방식도 일방적으로 강사가 청중에게 재담을 쏟아 놓는 방식이 아니다. 둘이 마주 보고 편히 앉아 농담하듯 대화를 펼치고 그 대화에 다시 청중이 끼어든다. 형식도 이러할 진데 하물며 내용이랴. 이런 대화에 CEO가 어디 있고 승려가 어디 있고 교수가 어디 있는가.
대학과 종교단체의 대화는 아직도 권위화된 형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이 학생들과 신자와의 소통 방식이 아니었는가를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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