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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 불문연 제18회 콜로키움 개최 28일, 교내 본관 3층 대회의실서
인도인들의 종교적 문화 관습 및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사유체계를 다룬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소장 김천학)는 9월 28일 교내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를 주제로 제18회 콜로키움을 개최했다.
콜로키움에서 김현구 박사는 ‘제2의 공ㆍ유 논쟁’을 주제로 입중론에 나타난 유식론 비판의 의의를 바바비베카와 비교하고,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의 근원적 차이를 그들의 진리관에서 찾아봤다. 바바비베카(靑辨, 500-570경)는 중관학파 최초로 유식 삼성(三性)설을 비판하며 중관학파의 교의를 선양하려고 했다. 이 비판이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사이에서 벌어진 ‘공(空)ㆍ유(有) 논쟁’의 시작이다.
최소한의 언어 표현에 머무는 중관학파와 언어에 긍정적 기능을 부여하는 유식학파는 ‘공성’에 대한 해석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짠드라끼르띠(月稱, 600-650) 역시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 유식사상을 비판한다. 그러나 짠드라끼르띠는 바바비베카와 다른 각도에서 유식학파 주장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짠드라끼르띠는 입중론에서 유식학파의 ‘알라야식’과 ‘공능(功能)’, ‘자증분(自證分)’설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비판한다.
김 박사는 “짠드라끼르띠는 공능의 무용성을 지적하고, 인식주관과 객관의 무자성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유식론 비판에서 객관적 사실의 경험이 불확실하다는 주장(유심)과 객관적 사실이 없다는 주장(유식)과의 차이를 구분한다면 유식이론은 중관학파가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김현구 박사, ‘제2의 공ㆍ유 논쟁’ 주제로 하야시 교수, ‘자은대사 기(基) 사적’ 연구 심재관 교수, 고대 인도인들 글자로 쪽 번호
콜로키움에서 하야시 카나 금강대 HK연구교수는 ‘자은대사 기(基)의 사적에 대하여’를 주제로 기(基)의 명칭ㆍ사적(事蹟)ㆍ진찬(眞撰)으로 여겨지는 장소(章疏)의 확정에 대한 연구성과를 소개했다. 또한 〈승만경술기(勝經述記)〉[기(基) 술(述) : 문인 의령(義令) 기(記)]의 개요와 과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기(基, 632-682)는 현장삼장(602-664)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중국불교에서는 신역 경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유식사상의 체계(법상유식)를 구축한 인물로서 자리매김 된다. 기(基)는 ‘백본(百本)의 소주(疏主)’로도 불리는 것처럼 저작도 매우 많다. 〈성유식론(成唯識論)〉 주석서인 〈성유식론장중추요(成唯識論掌中樞要)〉와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및 〈법화경〉 주석서인 〈묘법연화경현찬(妙法蓮華經玄)〉 등 진찬(眞撰)으로 확실시되는 것만 12부 96권이 현존한다. 중국불교가 가장 화려했던 시대에 활약해 많은 장소(章疏)를 남겼지만 기(基)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기(基)의 전기는 입적 후 300년 이상 뒤에 성립된 〈송고승전(宋高僧傳)〉의 ‘규기전(窺基傳)’이 잘 알려져 있다.
하야시 카나 교수는 “규기전은 많은 전승이 덧붙여져 기(基)의 저작 등에서 파악되는 인물상과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그것을 고찰한 연구는 거의 없다”며 “이름도 ‘기(基)’ 한 글자뿐인지 ‘규기(窺基)’인지에 대해 지금까지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콜로키움에서 심재관 금강대 HK연구교수는 ‘글자를 이용한 쪽 번호 매김에 대한 노트’를 주제로 발표했다. 고대 인도의 기록전통 속에서 숫자는 종종 특정한 글자를 통해서 표현돼 왔다. 숫자가 등장하기 전에 글자가 그 역할을 해왔을 것이고, 십진법이 등장하고서 병기돼 왔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십진법이 거의 책의 쪽 번호 매김을 대신하고 있지만, 인도의 사본들은 최근까지 글자를 이용한 쪽 번호 매김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심재관 교수는 “이런 것들이 인도인들의 종교적 문화관습과 문자디자인의 고답주의를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사본연구자들은 이것들의 발전과 지역적 변이, 사본의 활용성 등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